1. 문제는 태도
전기가오리의 시작은 2016년이었죠? 그간 인터뷰들에서 반복해오신 답변이겠지만 그 첫걸음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모든 인터뷰는 다 반복적인 것 같아요. 그렇잖아요. 왜 U21 인터뷰 해도 어떻게 만나게 되셨죠 물으면 저희가 실은 고등학교 밴드였는데 말이죠 하고 시작하죠. 전기가오리라는 소크라테스의 별명을 서른 살 무렵 책을 읽다가 발견했는데 보자마자 언젠가 써먹어야겠다 싶었어요. 제 이름은 언젠가 바꿀까도 싶지만 브랜드 이름은 정말 마음에 들어요.
1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록밴드로, 포스트펑크 장르를 주로 선보였다.
신우승이란 이름은 본명인가요?
네. 유감스럽게도. 도울 우자에 도울 승자를 쓰는데 영문을 모르겠어요.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는데 작고하셨으니 지금 물어볼 수도 없고.
한국에서 철학 공부 하면서 세미나와 강의를 들으러 대학교든 외부 공간이든 바쁘게 찾아다녔는데, 가면 가장 의아한 게 아무도 웃지 않는 진지한 분위기였어요. 재즈클럽 같은 델 가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틀리지 않는 엄격함이 아니라 인터플레이에서 오는 효과잖아요. 물론 철학은 재즈가 아니지만, 만약 제가 직접 콘텐츠를 만든다면 허들이 낮고 유머러스한 인상을 주고 싶었어요. 거기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 전기가오리죠. 애초에 칭찬이 아니거든요, 얼굴도 전기가오린데 하는 품도 딱 전기가오리다 하는 인신공격에 가깝죠. 철학자 개인을 철학의 전범이라고 상찬하고, 거기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신화화하고, 그의 흠결 없음을 암묵적으로 기대하는 태도들은 정말 싫거든요.
물론 전기가오리라는 이름을 소개했을 때 반감을 보이는 분들도 많았어요. 진지하지 않다거나 니들이 뭔데 소크라테스의 별명을 쓰느냐 등의.
지금은 다른가요?
지금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어쩌겠어요. 불필요하게 스트레스받느니 불필요한 평가에 좌지우지되지 말고 차라리 외로운 게 훨씬 좋다고 늘 생각합니다.
말씀하셨듯 외로울 수밖에 없는 1인 서비스이고, 진행할 때나 응대할 때 하나의 페르소나가 그대로 노출되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확실히 유머가 느껴져요.
노력하거든요. 맞춤법을 정확하게 쓰고 비문이 없더라도, 이 사람이 유머를 잃지 않았음을 보여줄 수 있다면, 여유가 전해지니까요. 전기가오리라는 진지하고 알차면서도 여유롭고 편안한 플랫폼이기를 바라요.
새로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앞 세대에 대한 불만을 동력 삼는데, 저는 교육이 서비스여야 된다고 믿거든요. 신발을 신어보고 사이즈가 안 맞는다고 하면, 보통 상점에서는 다른 걸 가져다주시잖아요? 그런데 철학 공부할 때는 듣는 사람들 전체가 이해를 못해도 선생님에게 다시 설명해달라고 요청하기가 쉽지 않아요. 아는 바를 설명하는 것만으로 교육은 충분하지 않은데 말이죠.
모여서 하는 공부에서 듣는 사람을 위한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면, 책에서는 번역의 구습과 난도가 답답했어요. 철학 전공자들은 현대 한국어를 학술어로 내세우는 데 자신감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영어나 독일어를 직역하는 정도로 번역을 처리하죠.
직역도 직역이지만, 선행된 번역어를 따라야 한다는 관습이 요구되지 않나요?
맞아요, 약속된 언어보다 동시대에 적합한 표현으로 번역하면 오히려 신우승은 뭘 모르는구나 하는 반응을 만나요. 그래서 괄호 안에 병기를 해서 이전의 번역어를 밝히죠. validity를 “유효성(타당성)”이라고 적는 식으로요.
저는 어려운 책을 좋아해요, 어려운 책을 읽는 재미가 따로 있죠. 그래도 입문자에게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얘기했으면 ‘입문’의 요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일정 수준의 도식화, 생략, 예제 쓰기, 즉 어느 정도의 왜곡과 누락을 감수한다는 뜻이죠. 그걸 감당하는 저자는 많지 않아요. 박병철2의 <쉽게 읽는 언어 철학> 같은 책은 그래서 귀합니다.
2 한국 철학자로, 영미철학 관점에서 언어철학, 심리철학, 예술철학의 주요 쟁점을 연구하며, 철학과 영화이론 등을 가르친다.
정규교육, 즉 대학 바깥의 대안적인 교육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셨나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고요. 바깥에서 진지하게 공부할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아요. 얼마 안 되는 곳들이 있는 이 신(scene)이 게으르다고 느꼈고요. 해오던 대로 해서 유지가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그런 대안적인 시스템에 일관성이나 장기성이 담보되지 않는 데는 역시 재정 문제가 큰 요인일까요?
아니요. 문제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항상 중요한 건 운영자의 태도예요. 돈이 모자라다면 정부 지원을 요청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태도를 바꿔야죠. 재정에 변동이 있다면 거기 적응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하고요. 전기가오리도 이번 달 처음으로 인쇄 부수를 400부 줄였어요. 긍정적이지는 않은 소식이죠.
폐쇄성은 늘 문제가 돼요. 외부에서는 진보적으로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가면 표절, 공역을 독자적인 번역 성과로 소개하는 문제 등 폐쇄성에 바탕한 폭력이 만연하죠. 수업시간 다 됐는데 허겁지겁 출력해 와서 인쇄물 나눠주는 모습을 보면 남의 돈 참 쉽게 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남의 돈 가장 어렵게 벌고 계신 것 아닌가요?
집에서 일하고 상사도 없는데 이 정도면 행복하죠.
천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돈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진보적인 운동을 하는 조직들이 지쳐 나가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결국 돈이 따라오지 않아서예요. 좋은 일을 3년 하다 방전되고 흩어지면, 동력도 성과도 증발되죠. 한 달에 300만 원만 주어져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어요. 구성원들이 미래를 내다보면서 자기 일을 꾸준하게 잘하려면 남의 돈을 벌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죠. 돈을 냈을 때 아깝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 서비스의 운영자가 게으른 게 맞아요. 전기가오리를 시작할 때 저는 그래도 세 명 밥 벌어 먹을 수입을 확신했어요. 번역과 과외에 경험과 자신이 있었죠. 디자인 감각도 없지 않으니, 망하지는 않겠다 싶었죠. 한창 바쁠 때는 전기가오리 스터디를 네다섯 개 운영하면서도, 과외를 열여덟 개씩 병행했거든요. 초반부터 공짜로 일하는 사람이 없도록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