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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건축가 서승모, 혼재된 시간 사이를 걷는다
판매가 ₩1
상품간략설명 인터뷰이 | 서승모 seungmo seo
인터뷰어 | 김미래 mirae kim
편집 | 쪽프레스 press jjokk
기획 | 윤지혜 jihye yoon
사진 | 박유진 eugene park
디자인 | 신채린 chaerin shin
공간 | 사무소효자동 samuso hyojadong


2023. 06. 26
텍스트라벨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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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39.5 40 40.5 41 41.5 42
KR 245 250 255 260 265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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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서승모, 혼재된 시간 사이를 걷는다 수량증가 수량감소 1 (  )
인터뷰이 | 서승모 seungmo seo
인터뷰어 | 김미래 mirae kim
편집 | 쪽프레스 press jjokk
기획 | 윤지혜 jihye yoon
사진 | 박유진 eugene park
디자인 | 신채린 chaerin shin
공간 | 사무소효자동 samuso hyojadong


2023. 06. 26
상품명

건축가 서승모, 혼재된 시간 사이를 걷는다

판매가

₩1

상품간략설명

인터뷰이 | 서승모 seungmo seo
인터뷰어 | 김미래 mirae kim
편집 | 쪽프레스 press jjokk
기획 | 윤지혜 jihye yoon
사진 | 박유진 eugene park
디자인 | 신채린 chaerin shin
공간 | 사무소효자동 samuso hyojadong


2023. 0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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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건축가 서승모, 혼재된 시간 사이를 걷는다

목차
The Walk #3
The Walk #3 건축가 서승모, 혼재된 시간 사이를 걷는다

이번 발걸음의 주인은 서승모 건축가입니다. 2010년부터 주거, 호텔, 업무시설 등 다종다양한 건축의 얼굴을 만들어 소개해온 사무소효자동. 이곳 소장인 그는, 한 인물이 들어가 자리할 ‘안’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맡는 만큼, ‘바깥’의 정보를 채집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민감하게 유지합니다. 저마다의 시간대를 축적한 행인들이 오가는 거리를, 민감한 피부와 발로 걸어볼까요.

서승모 건축가


주말의 짝사랑

저는 라디오를 즐겨 듣는데요. 쇼난비치(湘南ビーチ) FM이라고, 슬램덩크 무대인 에노시마 근처 바닷가에 있는 방송국 프로그램이에요. 도쿄에서 제일 가까운 서핑 스폿에서 들려주는 듣기 편한 플레이리스트가 참 좋아요.

거기에 가서 서핑도 해보셨어요?
아니요. 아직 못 가봤어요.

주말마다 서핑하러 가신다고 들었는데, 사계절 내내 즐기고 계신가요?
아니요. 실은 서핑을 잘하진 못해요. 서핑을 짝사랑하긴 해서, 서핑보드를 가지고 바다에 주로 둥둥 떠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죠.



몰래 둘러보기

제 일이 작업 끝나고는 멋있어 보여도 과정이 단순하고 멋지진 않아요. 많은 사람이 관계돼 있는 일이고, 그 지역, 그 나라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이 그대로 다 보이죠. 비용을 지불하는 클라이언트가 있고 지식인인 척하는 건축가가 있고, 제 팔다리가 되는 스태프들이 있어요. 또 시공사가 있고, 지어지는 건물 주변엔 주민과 공무원이 있죠.

완료된 프로젝트를 시간이 지나고 나서 직접 둘러보세요?
그럼요. 몰래 가는 편이에요. 근처에 일이 있으면 쓱 들르죠. 지난 주말에도 연남동에 현장이 있어 간 김에 근처에 작업했던 두 곳을 일부러 둘러봤습니다. 어쩐지 순서 없이 모든 주제를 말하게 되는 느낌이네요.

뭐라고 해야 할까, 이 인터뷰가 피상적이기도 하고 개괄적이기도 해요. ‘걸음’을 메타포로 삼다 보니, 처음 뵙는 분의 인생행로를 다 훑게 되는 것 같아서, 어려운 마음이에요. 저는 문학을 전공한 뒤로 출판사에서 일해온 터라, 먼젓번 인터뷰이들(출판인, 소설가)은 꽤 친숙하게 대화했는데요. 오늘 소장님과의 인터뷰는 새로운 도전이네요.
출판 쪽이라면 저희 클라이언트 중에도 워크룸과 슬기와민이 있어요.

그분들은 저희 같은 요즘 소규모 출판 브랜드에게는 바로 직전 선배이자 롤모델이에요.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모습만으로도 힘이 되는 선배들이죠.
제가 봐도 멋진 사람들이에요. 개성 강한 멤버들이 아웅다웅하면서도 서로를 침범하지는 않아서 재밌어요.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만나는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의 풍경과는 먼, 적절한 거리감이 한 조직을 오래가게 하는 것 같아요.



상상하는 버릇

백지 상태에서 건축과에 입학해서 양식을 채우는 것보다는 스무 살까지 한 개인이 아카이브해온 문화로부터 정체화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렇다면 소장님의 스무 살 이전 원체험이라고 할 만한 주요 경험은 무엇인가요?
어릴 적에는 좀 어두운 아이였어요. 불 꺼진 방에서 조용히 음악을 듣는.

지금 이곳 스튜디오도 꽤 어두운 편이네요. 아주 어릴 때부터 자기만의 방을 갖고 있었나요?
초등학생 때부터 혼자 썼어요. 어릴 때는 부모님이 무언가를 사주게 되잖아요, 사주신 쓰레기통이 안 예쁘다고 느껴지면 노끈으로 감는 식으로 물건을 장식한 기억이 나요. 꽤 오랫동안 물건을 잘 못 샀어요.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못 사기도 하고. 상상을 많이 하는 어린아이였던 것 같아요.

상상이요?
네, 상상하는 버릇은 지금 건축일을 할 때까지도 이어졌어요. 이를테면 잠을 자는 공간, 즉 침실을 디자인해요. 침대 하나만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요. 어떤 사람을 잠을 자기 전에 샤워를 하고 와서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면서 창문 너머를 바라본다든지 찬물을 한잔 마신다든지 하는 루틴이 있을 거예요. 그러고 나서 전자기기나 책을 들여다보는데, 그때는 어디에 앉아 있는 게 어울리겠다든지, 피로할 때는 침대에 걸터앉아 책을 읽을 법하다든지 그런 모습들을 상상해보는 습관이 있어요.

다이닝은 밥을 먹는 공간으로 한정할 수도 있지만, 그곳에서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잠깐 공상을 하거나 창밖 풍경을 바라보거나 할 수도 있죠. 어떤 구체적인 장면을 상상해야 그 장면의 배경이 되는 공간을 꾸릴 수 있게 돼요. ‘장면’은 영화는 물론 일본 건축에서도 많이 쓰이는데, 場(마당 장)자와 面(낯 면)자로 이루어져 있는 단어예요. 마당은 공간을 얘기하는 입체인 거고, 면은 그걸 단면으로 자른 거잖아요. 그 잘린 면들이 엮여서 건축이 되고 영화가 되는 셈인데, 면이 만들어질 때는 거기에 반드시 사람이 있어요.

구체적인 상상에 주관적인 취향이 자리하게 되니 건축주를 만나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들어두려고 하죠, 구체적으로 그 사람이 있는 풍경을 상상하려고요.



이야기로 푸는 데 익숙하지 않은 클라이언트의 경우에는 어떠세요? 이야기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인터뷰이를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끔 고민하거든요.
제 안에 있는 것보다는 바깥의 것들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들으려고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을 때도 있죠. 클라이언트 미팅이 끝나고 나서 직원들과 얘기 나누곤 해요. “도대체 건축주의 요구조건이 뭐인 것 같아? 행간이 파악되니?” 하고요. 행간까지 파악해야, 그 사람이 예를 들지 않은 것까지도 아웃풋으로 꺼낼 수 있거든요. 그 사람이 이런 것들을 좋아하니까, 이런 조합을 더하면, 이것까지도 수용할 수 있을 거야, 단계를 밟아나가지만 인과적이지 않아 보일 수 있는 결론까지 꺼내지죠.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라는 일본 건축가가 “건축가는 자동 번역기가 아니다.”라는 말을 한 적 있어요. 건축은 직역이 아니라 의역이에요, 건축주가 요구하는 조건이나 건축법규를 비롯한 기준을 물리적으로 자동 번역하는 일이 아니란 말이죠. 건축가인 내가 하나의 소스를 소화해서 내보내야 한다면, 그 소화에는 상상이 요구돼요.

일대일대응되거나 대체, 호환되는 걸 여러모로 경계하시는군요.
언급하셨던 대로, 학교에서 건축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자기 안에 있는 걸 끄집어내라고 많이 얘기해요. 예술은 매체만 다를 뿐 같다, 네가 가진 것을 글로 내보낼지 그림으로 내보낼지 음악으로 내보낼지 건축으로 내보낼지의 차이다, 다만 가진 것이 없으면 어디서든 찾아야 된다고요. 20대 전에 겪은 일, 쌓인 생각 들이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건축은 특히나 환경이 중요해서, 인생의 초반 20년을 유럽에서 지낸 사람하고 서울에서 자란 사람하고 산세 좋은 산골마을에서 자란 사람은 전혀 다른 건축관을 지니게 된다고 믿어요.

건축, 예술이라는 것을 잔뜩 힘 주고 생각하던 시절, 하와이에 간 적이 있어요. 문득 ‘이런 나라에서 무슨 대단한 건축이야, 오두막 하나로 족하지.’ 생각했거든요. 온화한 날씨에, 문 열어놓고, 깨끗이 청소하고, 적당히 먹고, 물가에서 놀고, 음악 듣고, 공부하면서 살면 되겠다 싶었어요. 여하간 하와이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 건축을 전공하면 서울에서 나고 자란 친구와는 다른 관점을 보이겠지요.

서울에서 자란 사람이 하와이의 건축 프로젝트를 맡는 수가 생기기도 할 테니 상황은 복잡해지겠네요.
네, 그런 식으로 흘러갈 수도 있죠. 제가 말씀드리려는 건 좋고 나쁨의 이야기는 아니고, 고유성에 관한 것이었어요.

그치만 가장 악명 높게 어려운 주문이잖아요, 안에 있는 걸 끄집어내라는 것이요.
그러니까 토해낸다는 표현을 하겠죠? 뭐가 나올지도 모르면서 토해내는 것. 결과적으로는 타인에게 감동을 주거나 타인으로부터 공감을 얻을 무엇인가가 돼야 할 텐데요. 그렇다고 너무나 평이한 것을 토해내서는 안 되겠고요.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것이 있어서 어떤 매체로 녹일지만 정하면 되는 단순한 길이 놓여 있을 테지만요. 자기를 매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외부를 흡수하고 적응하고 통과해나가는 좀더 투명한 길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들이 대체로 방황 혹은 방랑을 하게 되고요.
음. 저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좋아하는데요.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관점이 세상을 향해 열려 있어서예요.

다큐멘터리로 경력을 시작한 것만 봐도 그렇죠.
네, 고레에다는 예술지상주의나 에고이즘 같은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에요. 감독이 다루는 이야기들이 결코 가볍지 않은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불쾌하기보다는 사람으로서의 연대감, 사회의식이 고무되는 경험을 하게 되죠.



유학의 소득

유학 결정은, 한 나라의 사회나 문화를 겪어보려는 선택이었을까요?
누구나 자기를 보호하려고 하잖아요. 익숙한 한국에 있으면 친구, 부모, 형제도 있고, 잘 통하는 언어가 있죠. 그러다 스물여덟 살 떠난 일본 유학 시기에, 보호벽 없다는 느낌이 자유롭기도 했어요. 외국 친구들하고 싸우고 무시도 당하고 하면서 겪어나간 과정이 좋았고, 그 원동력으로 한국에서도 잘 지낼 수 있었고요.

건축적 소득은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학교에서 댄스 스튜디오를 설계하는 과제가 주어져서, 기반 조사 겸 사례나 역사를 찾고 철학적인 개념도 갖다 붙이고 보드에 여러 자료를 핀업해놨거든요. 그런데 저의 관점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만두라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자료보다는 느낌을 정확히 이야기하라는 거였죠. 구체적이고 고유한 생각이 없는 데서 무언가를 쌓으려 해보았자 헛돌게 되니까요. 이후로는 내 몸을 민감하게 유지해서 여러 정보를 채집하려고 집중하게 됐어요.

다른 한 가지는, 언어예요. 건축가들은 곧잘 현학적으로 얘기하거나 글쓰는 경향이 있어요. 저 역시 유학 시절 일본 친구들과 대화를 이어가는데, “미안. 네 말은 도저히 못 알아듣겠어. 네가 전문가라면 쉽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라는 말을 들었어요. 일본에도 건축의 여러 흐름들이 있겠지만 제가 배운 것은 사회와 동떨어지지 않는 참여성이에요.

설계도
사무소 효자동
사무소 효자동


직원 1, 2, …호

본격적인 건축가 삶의 시작은 RDAunit으로 보면 될까요?
제가 2004년 3월에 귀국했어요. 일본에서 지내던 학교가 우에노 구도심에 있었어요. 뒤쪽에는 작은 민가들이 있고 골목골목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죠. 서울이라면 삼청동이 어떨까 했는데, 가격 거품이 크던 차라, 복덕방 사장님으로부터 반대편 마을을 소개받았죠. 청와대가 있어서 개발도 눌러놓은 터라 한결 조용하고 고즈넉했어요. 더 좋은 거죠. 조그만 집을 얻어가지고 아주 적은 돈으로 고쳐서 있을 곳을 마련한 게 첫 스튜디오인 셈이에요. 상대적인 밀도라는 뜻으로 RDAunit이란 이름을 붙였고요. 한 건축이 조형물 같은 느낌이 아니라 흐르는 입자들의 모임처럼 밀도가 달라진다고, 그걸 조절하는 게 건축가의 일이라고 생각했죠.

당시 건축 일은 많이 받지 못했고, 예술대학을 나왔으니까 미술관과 프로젝트를 몇 개 하다가, 건축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맡을 때는 ‘사무소효자동’이라는 이름을 썼어요. 본격적인 건축은 10년 남짓 한 셈이에요. 사무소효자동부터 보는 게 맞죠.

사무소효자동부터 직원을 두셨으니 그런 면에서도 변곡점으로 느껴지시겠네요.
그렇죠. 직원 1, 2호는 독립해서 ‘오헤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어요. 우리가 설계한 한옥에, 같은 동네에 살고 있고, 제 아내가 그 집 아이들을 봐주기도 하고, 정서적 유대가 꽤 끈끈해요. 사무소효자동의 1호, 2호가 그렇게 있어준다는 게 너무 좋고, 그 사이에 얼마나 힘든 상황들이 있었겠어요. 사람들이 함께하는 일이니까.

언제부터 ‘호’를 세지 않게 되셨어요?
3호, 4호, 5호…… 쭉 세오다가, 4-5년 전부터인가 스스로 옛날 건축, 옛날 사람인 면을 좀 실감했어요. 동료와의 정서적인 관계가 다소 끈적끈적했다면 지금은 좀더 산뜻한 거리감이 있죠. 1호, 2호만 해도 ‘다시열린세상’이라는 밥집에서 매일같이 함께 야근하면서, 울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그랬죠.

이 시대에도 많은 자영업자들은 끈적할걸요?
그렇죠, 저는 단시간에 두 가지를 겪으니까 혼란스럽긴 했어요. 송길영 님이 쓴 책을 보다가 멋진 말을 발견했는데요. 요약하면 “변화는 중립적인 것이다, 준비된 사람은 변화를 통해 기회를 얻을 테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변화를 통해 길을 잃을 것이다.”라는 이야기였어요. 변화된 상황을 상황으로 받아들이려고 해요, 내 가치관은 내 안에서 잘 정리하고 나랑 맞는 사람을 만나서 얘기를 해나가면 되겠지 생각하려고요.

여전히 필드플레이어시니까 완전히 스위치를 끄기는 힘들 텐데요.
그래서 한 공간에서 오글오글 있던 데서 이렇게 층도 분리하고 적당하게 거리를 두면서, 직원들과 모일 때는 밀도 있게 이야기하고 사적인 대화는 최소화하고 회식은 없고 하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그렇게 둬도 자기들 안에서 누구는 친하고 누구는 소외되고 이런 일들은 있어 보여요, 그마저도 자율로 두려고 하지만요.

소장님이 공공의 적이 되지 않는 이상 획기적인 단합은 없겠죠.
그렇다면 다행인데요? 기본적으로 건축계는 소장이 공공의 적이거든요. 아무래도 일의 양이 상당하고 급여가 높은 편도 아니니까 기본적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기죠. 하지만 저는 지금 사회가 가진 문제를 나에게만 이야기하지는 말라고 말해요. 내가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 이상의 관습을 고치는 것은, 고치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에게도 문제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다만 건축 프로젝트를 하는 과정에서 비합리적인 부분은 최대한 줄이겠다고 약속하죠. 그래도 공공의 적이겠죠, 적입니다.

지금 NBA의 르브론 제임스 같은 역할로 보여요.
르브론이 뭐예요?

NBA에서 가장 오래 뛴 선수 한 명인데요, 마흔인데도 아직 정상에 있어요. 플레이를 함께하지만 코트 위에서 지휘자 같고, 마지막 쿼터에는 궂은일들을 마무리하는 인상이거든요. 경기의 한 요소이지만 경기 템포 자체를 조절한다는 느낌을 줘서 경이로워요.
그건 중요하죠. 정말로.

구단주나 감독이 아니고, 같이 뛰는 리더이니까.
제 별명이 실장이에요. 예전엔 소장이었거든요. 지금은 팀장까지 내려갔나? 떨어져 있고 지시만 하고 이러면 프로젝트가 망가지더라고요, 그래서 더 내려오고 더 내려오고 더 내려오고 그러고 있죠.

르브론도 경기 당일 네다섯 시간은 족히 일찍 나와서 연습하더라고요.
출근이라면 저도 제일 일찍 합니다. 직원들 출근 전에 미리 와서 그날의 업무분장을 하는 것이 첫 루틴이에요.



한국에 정박하기

한국성에 대해서 주요하게 언급하시잖아요.
제가 일본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해명하듯 말하는 부분도 있고,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문화로 정립해나가는 과정을 봐온 데서 자극을 받기도 했고요. 한국에는 스위스 건축부터 일본 건축까지 모든 나라의 건축이 있어요. 스위스에서 공부한 사람은 여기에서도 스위스 건축을 하고 일본에서 공부한 사람은 일본 건축을 하는 식이죠.

저는 그다지 요즘 이야기되는 K-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젊었을 때는 선을 막 넘어가는 그런 한국의 에너지가 되게 좋았어요. 지금 한국을 건축 위주로 생각해보면, 도시가 점점 못생겨지는구나 싶어요. 신도시 풍경이 엇비슷하거든요. 개별 사람이 보이지 않는 환경은 우울하게 느껴져요. 사람이 보이면 그다음에 언어적으로 환기되는 메시지가 찾아지거든요. 그런 과정을 선호해요.

멋진 도시란, 그 안에 각기 다른 시간대를 품어야 해요. 런던이나 베를린에 가면 마주치는 사람들의 복식에서부터 여러 시간대가 느껴져서, 보는 입장에서 눈과 머리가 즐겁죠.

말씀하신 대로 한국에는 유행하는 풍경이란 것이 있어요, 그게 장점이기도 하지만.
제 동생도 일본에서 유학을 했는데 일본에 있는 식당들은 좀 오래가니까 옛날에 다니던 학교를 들르면 옛 추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거든요. 10년 내외로 다니던 학교 근처라면 애틋한 기억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어떤 기억을 소환하기 위해서는 거점이 필요하고 사람이 필요해요. 정서적 유대가 앵커링될 물리적 바탕이 없어진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죠.

자주 사라지는 가게들만의 문제는 아니겠죠. 먹고살기 힘든 환경이니 그럴 수는 있는데, 또 제대로 준비된 가게들은 남잖아요. 그래서 제가 서촌을 좋아하는 걸 거예요. 사람이 많아지는데도 고유한 도시 구조가 지속되는 편이고, 거미줄처럼 엮인 가게들이 계속 있어주니까요. 두오모도 바 참도 자주 들러요.

혼재된 시간성은 제가 행복을 매기는 기준이 돼요. 저는 사실 이제 건축가들은 잘 안 만나요. 비슷한 얘기, 그리고 우울한 얘기로 빠지게 되니까요. 역시 각각의 자기 힘이 있는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데서 행복감을 느끼고 많이 배우기도 하죠. 개인마다 쌓은, 그리고 현재 지니고 있는 여러 시간들이 교차하는 순간이 좋아요. 오늘의 이 분위기에서도 간접적으로 느끼고 배워요.



화는 불이다

공간 여기저기에 작은 문구들을 출력해두셨네요.
직접 쓴 건 아니고 모아놓은 글인데, 힘들고 괴로울 때마다 읽으면 좋을 만한 것들이죠. 목표를 차근차근 상기시킬 겸 뽑아두곤 하는데, 계속 늘어나서 시리즈 비슷해졌어요.

제가 화가 많은 편이거든요. 도제였을 땐 바로 표현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화를 내고 나면 저도 좋은 감정이 아니게 된다고 느꼈죠. 결국 화는 불이다. 화를 내는 사람 역시 타게 된다. 화를 내는 사람도 힘들어진다. 그런 식으로 평상심이라는 단어를 출력해서 붙이게 된 거죠.


‘조용한 해변의 작은 피자집 주인’, ‘평상심' 등의 문구가 사무실 곳곳에 적혀있다.


빛과 그림자가 붙는 재료

어떤 것을 주로 건축의 재료로 삼으시나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두 가지로 얘기해볼 수 있겠어요. 보이지 않는 것을 먼저 이야기하자면 촉각적인 것, 사진에서 느껴질 수 없는 것을 고심해요. 사진에서는 조형이나 디자인이 눈에 들어오는데, 공간은 빛하고 그림자가 재료에 붙어가지고서 촉각을 만들어내요. 새로운 재료를 사용할 필요 없이, 지극히 평범한 재료로서 빛하고 그림자 같은 것을 조절해보려고 하고 텍스처를 변화시키기도 해요.

기본적으로 진성 재료, 돌, 철, 흙과 같이 자연 소재로 만들어진 것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플라스틱보다는 시간을 품어낼 수 있는 것을 쓰려고 하죠.

진성 재료 안에서도 특히 자주 찾으시는 게 있으세요?
콘크리트를 선호하고, 골재가 섞인 마감도 좋아하고, 돌도 좋아하고, 나무도 좋아하고.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서 다르게 반응해요.



시작점과 끝점

보통 건축 프로젝트를 개괄한다면, 시작점부터 끝점까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일단 저는 건축주의 요구 조건이나 땅의 조건을 면밀히 파악해요.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게 좋겠는데요. 이 사진은 지금 연남동에 지어질 건물이에요. 근린생활시설은 동네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건물이에요. 주거 가까운 곳에서 생활에 편의를 줄 수 있는 시설들이 들어가는 공간이죠. 밥집이 들어갈 수 있고 꽃집이 들어갈 수 있고 매장이 들어갈 수 있어요.

건축이 완고한 형태를 가지고서 그 안에 어떤 프로그램을 차곡차곡 쌓는 게 아니라, 원형 계단과 복도 공간이 반외부로 나와 있으면서 개방성을 지니게끔 설계했어요. 반외부 공간에는 테넌트들의 가구가 나올 수도 있고 오브제가 나올 수도 있죠, 도로를 면한 거실이 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노출된 공간들이 관리되고 잘 보여지면 주변에 즐거움과 활기를 줄 수 있겠죠. 어닝, 화분 같은 것들이 놓이는 테라스를 두면 주변과 대화하는 건물이라는 인상을 주게 될 거예요.

방어적이라는 인상이 없어서 좋은데요.
완성되면 한번 들러주세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서 다이어그램 정도로 구체화하면 감도 높은 친구들이 계속 만져가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게 돼요. 적당한 레시피만 정리돼 있고 거기에 소금도 넣고 설탕도 넣고 간장도 넣고 하면서 이렇게 쭉 맛을 깊게 만들죠.

요리 메타포가 역시 이해가 쏙쏙 돼요.
맨날 요리 얘기만 해요. 삶의 비유로 요리만 한 게 없더라고요.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납품 상자’라는 프로젝트의 아카이브를 클라이언트를 포함한 작업자와 공유하신다고 들었어요.
한 프로젝트가 마감되면 물리적으로 마침표를 찍고 싶어져요. 건축주, 시공자, 저희 이렇게 동일한 상자를 세 상자 만들어서 나누어 가져요.


진행 중인 연남동의 근린생활시설


변수와 상수

앞으로는 어떤 건축을 해보고 싶은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실 텐데요.
저는 건축물의 상에 대한 이상형은 없어요.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중요해요. 건축가하고 클라이언트의 대화 속에서 만들어지는 무엇이니까요.

‘좋은 사람’이란 점차 잘 맞는 클라이언트와 만나진다는 뜻인가요? 아니면 아직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면서, 좋음을 발견하고 계신 건가요?
아직도 전혀 알 수 없어요. 사람이랑 엮여 있는 것은 예측이 불가능해요. 뭐 하는 사람이지, 어떻게 우리를 찾아왔지, 우리가 어떻게 만나게 됐지, 이런 단순한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이 다르기 때문에 매 프로젝트가 재밌어요.

그렇게 지속적으로 사람을 재밌어하시는 것 자체가 엄청난 재능이네요.
재능은 아닐 거예요. 자주 만나기보다는 혼자 상상하는 걸 좋아하니까.

깊이 만나는 셈이죠.
그렇기는 하죠.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깊이 만나고 배우려고 하고 재밌어하는 마음이 바닥나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거든요. 그런 호기심이랑 호감이 줄어들었다고 느끼면 무섭더라고요.
타인에 대한 그런 게 없어졌을 때 말씀이죠?

네, 저희가 책을 만드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르치고 싶어서가 아니라 배우고 싶어서이니까요. 배우고 알아가기 귀찮고 혼자로도 충분하고 자족적인 상태가 되면, 그때의 일은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곤 해요.
번아웃까지는 아니라도 그런 시기가 당연히 있을 거예요. 저만 해도 왕성하게 이틀에 한 번씩 사람 만나고 웹서칭해서 좋아하는 거 찾고 막 그러던 20-30대 시절이 있었어요. 여행도 가면 쉼 없이 돌아다니고 사진 찍고 기록하고의 연속이었죠. 지금은 안 그래요. 딱 한 군데 보려고 여행하고, 여행자보다는 잠시 조용히 살다 오는 느낌이 더 좋아졌고, 그렇게 해서 또 얻어지는 게 있고요. 그러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다만 삶이라는 건 적절한 보상이 따라야 작동하는 것 같아요. 경제적인 것뿐 아니라, 좋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풍요로워지거든요. 계속 늘어나면 30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가게 될 거예요.



산들바람과 피자

3년 전쯤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었어요. 일하는 분위기가 바뀌고 건축주가 힘들게 하고 여러 상황이 겹쳐 와서 선택한 것이 러닝이었거든요. 미친 듯이 경복궁을 뛰던 시절이 있었어요.

무릎에 무리가 가서 서핑으로 바꾸신 거죠?
네, 극기처럼 뛰다가, 이번엔 서핑을 시작했죠. 서핑을 못하지만 보드 위에 둥둥 떠 있는데 기분이 너무 좋아요. 이 스튜디오 이름을 산들바람이라고 지었는데요. 바람이 나를 살려주는구나 그렇게 느꼈기 때문이에요.

은퇴하면 피자집 열고 싶다고 얘기하셨잖아요.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어요?
이태리로 6개월 피자 코스를 배우고 와서 차릴 거예요.

해변가에서 화덕 피자를 만드시는 거네요? 제 지인은 작업비용을 피자 레시피로 받은 적이 있어요. 레시피보다는 이 일화를 얻은 것 같지만요.
제철에 좋은 식자재를 올려서 피자를 판다, 하는 것이 계획의 전부예요. 손님이 많아서도 안 되고.

재고가 남으면 나눠주시나요?
재고는 안 남게 해야죠. 얘 때문에 내가 힘들어지면 안 되니까. 은퇴 후의 상상, 재밌어요. 어디에다 하지? 음악은 어떤 걸 틀지? 플레이리스트부터 짜자. 이렇게 상상하면서 노는 거죠.



인사와 청소

‘호흡’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뛸 때도, 걸을 때도, 호흡을 의식해보곤 해요. 호흡을 신경 쓴다는 건 혼자 있다는 뜻이죠. 걷거나 운전하거나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면 많은 생각들이 뒹굴뒹굴 구르면서 경계를 풀어 헤치는 순간이 찾아와요. 그러다 반짝 무언가 엮여서 꼬여요. 그렇게 매듭진 걸 기억해뒀다가 활용하는 편이에요. 작업의 인풋이죠.

인터뷰 취지에 딱 들어맞는 답변이네요. 정말로 걷기에서 영감을 얻으시는군요. 도시와 거리는 건축가가 속해 있기도 하고, 또 설계할 대상이기도 하잖아요? 건축가가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복잡한 행위로 느껴져요.
어렵네요. 그러나 단순하게 돌아오자면 역시 혼재된 시간성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게 도시 매력의 정수예요. 그렇게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려면 인사와 청결이 요구되겠고.

인사에 관한 이야기를 얼마 전에 들었어요. 친구가 강아지를 키우는데 그 강아지의 사회성을 높여주기 위해서는 강아지가 만나는 모든 동물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인사를 시키는 게 효과적이라고요. 강아지를 키우기 전에는 안 그랬던 사람이 마주치는 이웃마다 큰 소리로 인사하니까 처음엔 당황하던 이웃들도 금세 적응해서 그 마을에서는 인사가 자연스러워졌다고요. 결국 사회성 습득을 경험한 건 친구예요.
그러니까 별거 아니에요. 제가 봤을 때, 나라 좋아지는 데는 인사와 청소만 한 게 없어, 집 앞 쓸기랑……


인터뷰이 | 서승모 seungmo seo
인터뷰어 | 김미래 mirae kim
편집 | 쪽프레스 press jjokk
기획 | 윤지혜 jihye yoon
사진 | 박유진 eugene park
디자인 | 신채린 chaerin shin
공간 | 사무소효자동 samuso hyojadong

2023. 0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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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 | 서승모 seungmo seo
인터뷰어 | 김미래 mirae kim
편집 | 쪽프레스 press jjokk
기획 | 윤지혜 jihye yoon
사진 | 박유진 eugene park
디자인 | 신채린 chaerin shin
공간 | 사무소효자동 samuso hyojadong


2023. 06.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