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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The Walk #5
The Walk #5사진가 김경태, 찍을 것이 놓인 실내를 왕복한다

세계의 무술을 섭렵하며 중력을 경험해나가던 소년은 이제 작업공간을 걷습니다. 한 사물을 이리저리에서 보고, 보지 않고 스쳐 지나가고, 돌아와서 눈길을 주다가는 정지한 화면에 담습니다. 물론 이것이 이 사물의 전부는 아닙니다. 전부가 아님을 알고, 어깨와 눈의 피로를 참으며, 일부를 겹칠 뿐. 2012년부터 특유한 관찰의 시선을 보여온 김경태 사진가를 만나 잠시 걸어보았습니다, 작지만 무한히 걸을 수 있는 그의 실내에서.

김경태 사진가
생산적인 도피

첫걸음이라고 하면 언급하고 싶은 사건이나 특정 시기가 있으세요?
학부 전공이 그래픽디자인이었는데, 그때도 사진을 굉장히 좋아해서 취미로 작업한 걸 가지고 독립출판물로 제작하기도 했거든요. 그 작업들이 사진가 커리어로 보자면 첫걸음에 가깝게 느껴져요.

그때의 프로젝트들은 단독으로 진행하신 거예요?
2008~2009년 정도였는데요. 미디어버스에서 진행한 독립출판 워크숍에 참여했고, 그때 수강했던 친구들이 모여 프로젝트를 꾸리게 됐어요. 학부 시절 작업했던 사진들 일부와 새로 작업한 것들로 저도 나름의 출판물을 만들었어요. 플랫플랜(Flatplan)이라는 이름의 모임이었고, 아트선재 1층에 있던 더북스에서 간단한 행사도 진행했어요.

좀더 본격적인 사진 작업으로는 2011~2012년에 걸쳐 찍었던 밤의 모텔 외관조명과 상가주택을 촬영한 시리즈를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저는 돌 사진 찍으신 때부터 알았던 것 같아요.
말씀드린 건 돌 사진(『온 더 록스』) 전에 했던 작업이었는데요, 깜깜한 도로에서 보이는 모텔 외관 조명의 형태, 지상 주차장에 드러난 건물들의 옆면이나 뒷모습, 그리고 오래된 상가주택의 형태가 재밌다고 느꼈어요.

사진가로의 본격적인 걸음 이전의 걸음이라면 그래픽디자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그래픽디자인이 사라진 정체성이 아니라면, 지금껏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기본적으로 그래픽디자인의 방법론이나 접근법을 어느 정도 공유해온 것 같아요. 계속 해왔던 것이기 때문에.

상술한다면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제약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태도랄까요.

디자인 작업의 제약이란 건 우선 클라이언트 존재잖아요? 사진도 똑같은 환경이라고 볼 수 있나요?
그 부분이 지금과 가장 다른 점이죠. 하지만 사진 작업을 하더라도, 기간이나 예산, 표현방식 등 일부 제약을 안고 가죠. 제약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많이 고민해요. 작업을 하면서도 제약을 해결해가면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추구하는 방식이 몸에 익어 있어요.

처음부터 작가로서 정체화하고 훈련해온 분들과 이야기 나눌 때면, 조금은 다른 점을 느껴요. 저는 작품의 내용 자체도 중요하지만 보이게 될 장소와 방법에 따라 작품의 최종 형태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픽디자인이 싫어서 반대 방향으로 떠나신 게 아니었네요. 빡빡한 요건을 충족하는 해결사 역할을 관두면서 떠나는 디자이너들이 있으니까요.
그쵸, 디자인 자체가 싫진 않았어요. 그때까지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려고 준비를 했던 시기가 있는데요. 그래픽디자인을 그만두더라도 사진은 진지한 취미로 지속할 마음이었는데, 친구의 권유도 있었고, 아무래도 취미 이상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준비하던 걸 접고 곧바로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미련 없이 정리하고 훌쩍 유학 떠나신 거였네요.
이래저래 도피였어요.

학과명이 어떻게 되죠?
지금은 세분화됐다고 들었는데, 당시에는 아트디렉션이었어요. 1년은 타입디자인, 그래픽디자인, 사진을 두루 다루면서 활용하는 것을 배우고 2년차부터는 선택심화 과정으로 수강하는 체제였어요. 같이 다룰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느껴서 갔지만 막상 사진에 집중하니까 디자인에 에너지를 투자할 여력이 없더라고요. 가끔 제 포트폴리오를 정리한다든가 선반을 제작하고 설치하기 위해서 그리드를 계획하는 등 소소한 용도로 활용하고 있어요.

당분간은 그래픽디자인을 할 가능성이 없겠죠?
네, 아직 사진만도 벅차서.

아예 다른 영역으로 훌쩍 떠나보고 싶어질 수도 있잖아요?
아, 그러게요. 그럴 수도 있죠.

김경태 작가의 사진집.
왼쪽부터 차례대로 『ON THE ROCKS』, 『From Glaciers To Palm Trees: Tracking Dams in Switzerland』, 『표면으로 낙하하기』, 『Angles』
건물의 벽과 모서리를 촬영한 사진집 『Angles』, 프레스룸
불모지의 관찰가

예전에 다니던 잡지사(《지콜론》)에서 단행본 브랜드를 론칭하게 되었는데, 국내 기획을 하는 중에 여러 분들에게서 동시다발적으로 작가님을 추천받았어요. 어떤 카테고리일진 모르겠지만 취향이 독특하고 발상이 기막힌 친구가 있는데, 괜찮은 책이 나올 거라고들 얘기했어요.
예전엔 제가 생각해도 그랬던 것 같은데, 잘 몰랐던것 같고 지금은 워낙 잘하는 분들이 많이 보이니까.

예전엔 불모지라고 느꼈나요?
그 자체가 불모지라기보다는 왜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이 없는지 의아해했죠. 물론 보이지 않는 데서 하는 분들이 전무할 린 없지만요.

드러나거나 마주칠 창구가 적었나 봐요.
그럴지도요. 초창기 SNS에 사진을 올리면 “이렇게 찍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보고 똑같이 찍으라면 대부분 쉽게 찍을 텐데’라고 생각했죠.

못 찍을 텐데요.
물론 차이가 있죠. 디자인도 마찬가지겠지만 분야 내 전문가들이 보면 분명 넘기 힘든 차이가 존재해요. 하지만 외부에서 보면 비슷해 보이기도 하거든요.

흉내 내기 어려울 거라고 느껴지는데요. 장인에 가까운 성향이 포커스스태킹 같은 작업방식으로 연결된다고 느꼈어요.
그런 식의 작업 방식이 저의 강점이라고 여겼고, 아직까지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게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가끔 자문해요.

효율과 반대에 있는 게 오히려 좋아 보이는걸요.
즐거우면서도 힘들긴 해요. 나를 갈아 넣는 일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고요. 한 끗 차이를 허용한다면 촬영도 비슷한 결과물을 낼 수 있으니까요. 티 안 나게 에너지를 쏟는 부분에 대해서 늘 고민이에요.

그거 느껴져요. 티날 리 전혀 없는 영역, 이를테면 사진을 찍기 전까지의 관찰 같은 것에도 시간을 많이 들인다는 인상이에요. 만약 이 짐작에 일리가 있다면, 관찰의 의지나 동력은 어디에서 오나요?
관찰하는 건 어렸을 때부터의 습관이에요. 열 살까지 꽤 시골에 살았어요. 합천에서 다섯 살까지, 거창에서 열 살까지. 냇가에 다니는 게 일과였고, 물고기랑 돌을 채집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잘 잡으려면 잘 봐야 되잖아요. 물고기나 곤충들 대다수가 자연에 섞여 들어가 있고 돌도 널린 데서 추려야 하니 관찰하는 나날이었어요.

동행도 있으셨어요?
가끔이요, 주로 혼자 다녔어요. 합천은 정말 시골이어서 또래 애들이 거의 없었죠. 읍내에 있는 유아원 같은 곳에는 그래도 좀 있었는데 한 동네라기엔 먼 곳에 사는 애들이었고요. 거창에 살 때는 옆집에 다른 친구들이 있으니 여럿이 다니기도 했어요. 참, 당시에 아버지 취미가 분재와 수석 수집이었어요.

아! 그 얘길 들으니 『무능한 사람(無能の人)』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만화가 떠오르는데, 고적한 시골 마을에서 수석을 채집하고 판매하는 아버지 얘기거든요. 거기 나오는 꼬마 아들은 아빠를 이해 못 하지만… 그거 추천드릴게요.

찍을 것과 함께하는 생활

작업에 있어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이나 과정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나요?
이렇다 할 구체적인 프로세스가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보는 데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해요. 뭘 찍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일단 물건을 받아놓고 계속 한자리에 둬요. 하루 종일 물건만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한자리에 두고 저는 저대로 생활하죠. 저는 그걸 관찰이라고 여기는데 관점에 따라 작업을 미루는 거기도 해요.

약간 섬뜩한데요. 내가 바라보는 순간 빼고는 그게 날 바라보고 있을 텐데요.
사람이라면 무섭겠지만, 물건이라 괜찮아요. 인물 촬영은 잘 못하겠더라고요.

요청은 많죠?
가끔 오는데요, 잘 아는 사람이 청할 땐 덜 난처해요. 마주 보는 게 익숙할 정도의 사람은 찍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인물을 잘 찍는 편은 못 되지만요. 뭔가가 계속 바뀌는 순간을 포착해야 되잖아요. ‘이건 이 각도, 이 순간이 최고야’라고 단언하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예요.

그럼 보통은 찍을 수 있는 만큼 여러 장 찍은 다음에 소거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촬영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해요. 특히 건물이나 특정 이벤트를 촬영할 때는 가능한 한 많은 장면을 확보해두려고 하죠.

작업실에 들여다놓고 볼 수 없으니까!
맞아요. 작은 사물을 촬영하는 경우에는 다양한 장면을 찍기보다는 줄곧 보다가 한 장면을 택해서 담아요. 그 범위 내에서는 조금씩 수정하면서요. 조금 틀어서 찍거나 조명에 변화를 주는 식으로 하는 편이에요.

그러니 노동강도가 세겠네요. 환경도 바뀌고 시간도 흐르니.




(언)아카이브에 따른 활동량 왈가왈부

사진작가 경력이 10년 조금 넘으셨잖아요. 그간 활동량이 일정하지 않으셨죠?
스위스에 있을 때는 외부 활동이 많지 않았어요. 그때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서. 스위스로 유학 가기 직전에 사진가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바로 그렇게 시작해버리는 데 두려움이 있었어요. 좀 더 혼자 해보고, 그러고 나서 하더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갔기 때문에 도피성 유학이라고 말씀드렸던 거예요.

도피지만 ○○로부터만이 아니고 ○○로 향하는 도피니까 좋은데요. 앞으로의 활동량은 조절하실 수 있어요?
한국에 돌아오고부터는 주어지는 대로 꽤 많이 했어요. 물론 SNS만으로 보자면 불규칙하고 적어 보이는 게, 업로드해야지 생각했던 게 한 달씩 밀리다 해를 넘어가니까 이제는 바로바로 못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럼 아카이브는 웹으로 하고 계세요?
아니요. 웹도 따로 운영하는 것이 없어요. 작업의 전 공정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서 지금 최대의 숙제를 꼽자면 웹사이트 만들기일 거예요.

직접 만들 예정이세요?
저는 사진만으로도 벅차서 개발과 디자인은 의뢰할 생각을 하고 있어요. 돌이켜보면 최근 5년은 이틀 이상 쉬어본 적이 없어요. 휴가만을 위한 휴가를 가본 적요.

디지털 노마드의 숙명이죠, 언제나 접속돼 있는 상태로 휴가 가는 거요.
맞아요, 개인 작업이랑 의뢰받는 일을 모두 다루려니까 더 여유가 없는 것 같고. 전시 같은 경우도 저는 아직까지는 참여 기회가 생길 때마다 되도록 신작을 선보이려고 하거든요.

아카이브 형태로 선보이는 게 아니니까 에너지가 새로 들겠네요. 그런 데다 아카이브를 하려면 조만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겠고요.
가능할 때 되도록 다른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기간이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새 작업을 해요. 그래서 활동량이 일정치 않다는 질문에 놀랐어요. 저는 늘 활동중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하냐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었거든요….

하긴 여기저기서 이름이 발견되니까요. 일정치 않다는 인상은 아마도, 아카이브의 부재에서 온 것 같아요. 연역적으로 미션에 따른 타임라인을 설정한다는 느낌이 아니고, 흘러가는 대로 누군가가 부르면 응하고, 다른 데서 부르면 거기에 들르는 식의 장면이 그려졌거든요.
맞아요, 끝없이 흘러가고 있죠. 저는 일정이나 조건이 아주 척박하지 않다면 가능한 한 전시에 참여하려고 해요. 그렇게 계속하게 된 거예요.

“아주 척박하지 않다면”이라는 판단은 사전적인 거고, 막상 작업에 임하게 되면 도전 이상인 경우가 많잖아요. 지난 프로젝트 중에, 이건 애초에 안 하는 게 좋았겠다, 너무 힘들었다 하는 것도 있죠?
매번 그렇죠! 거의 매번 왜 내가 이렇게 하기로 했을까 자주 생각하는 편이에요.

근데 그러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시잖아요.
문제는 직성일까요?

갑각류의 탈피 본능 같은 거 아닐까요? 도중에 완수하지 못한 프로젝트도 있으세요?
어떻게든 끝은 내요. 평소 꼼꼼하고 완벽한 성격이 아닌데도, 작업은 완벽했으면 하고 욕심을 내니까 거기서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 덕분에 결과물이 봐줄 만해져요. 어떨 때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신작을 계속 내려고 하고, 계속 달라지려고 하고, 반복을 못 참는 성미가 있으신 거예요?
반복적인 걸 되도록 피하려고 하는데, 이제는 그동안 했던 작업들을 좀 더 반복해봐도 좋지 않을까 한편으로 궁금해요. 계속 다른 것을 하려니까 경황 없이 넘어가기도 해서, 지난 작업들을 펼쳐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싶기도 해요. 원래는 그런 건 한참 뒤에 하자 싶었는데, 나중은 나중대로 하기 힘들어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곧 아카이브 형태로 만날 수 있겠네요.
아카이브하면서, 스펙트럼을 넓게 한눈에 보면 어떨까 해요. 작업의 대상과 스타일이 바뀌니 보는 분들도 왜 이걸 했지 의아해하는 경우도 있어요. 한번은 대상과 표현방식이 바뀐 이유가 이전 작업의 한계를 느껴서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조금 충격이었어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그러니까 그 방법과 시선이 다 소진되어서 넘어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요. 아직까지는 한계를 볼 때까지 밀어붙이거나 도장을 깨듯 넘어간 것이 아닌데, 보완이든 아카이브든 필요한 단계라는 생각은 들어요. 기존의 아카이브를 펼치면서 동시에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걸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요리와 운동의 추억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작업과 생활이 그다지 분리되어 있지 않군요.
제일 큰 문제예요.

비교적 생활적인 영역이라고 말해줄 것 있으세요? 여기 있는 어항 관리도 작업의 일환으로 보이는데요.
맞아요, 작업처럼 하고 있고 언젠가 작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죠.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얻은 취미예요.

잠재적으로도 연결 가능성 없는 영역은 없으세요? 이를테면 요리 같은 거요.
요리를 제대로 해본 지는 엄청 오래됐어요.

저 최초로 먹어본 아스파라거스가 작가님이 해준 요리에서였어요. 10년 전쯤 지콜론북에서 『크리에이터의 즐겨찾기』랑 『반려식물』 저자로 참여했을 때 출간 기념으로 초대해주셨잖아요. 유학 가기 직전이었는데, 도시에서 생활하는 1인 선배의 모습을 그때 보여줬죠. 아스파라거스를 구워 먹고 이끼를 키우는 풍경으로요.
그러고 보면 그 시기 열심히 해먹었어요. 주로 집에서 작업했으니까 요리하기도 좋았고, 집 근처 가까운 곳에 식당도 별로 없었거든요. 특히 제가 접근할 만한 가격대에서 맛있게 하는 외국 음식점은 손에 꼽힐 정도였어요.

스위스에서는 요리를 안 할래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오히려 한국에 돌아와서 식재료 물가에 충격을 받기도 했고, 지금은 어지간하면 현지보다 서울에 잘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예전만큼 직접 요리를 많이 하지는 않아요.

10년 만에 강산이 바뀌었네요. 운전은 여전히 좋아하시죠? 그러고 보면 작업이랑 연결됐네요, 운전은. 『From Glaciers To Palm Trees』 사진집 프로젝트에서 운전이 중요했으니까요. 걷는 것보다 속도가 나서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런 것 같아요, 중고등학생 때는 스키랑 스노보드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혼자 타러 다닐 정도로요. 비싸서 자주는 못 가고, 가면 새벽부터 야간까지 타고 왔어요. 뭐랄까, 그 중력의 느낌이 좋아요. 비슷한 이유로 무술을 좋아했거든요. 특정한 동작들을 할 때 몸이 중력 가속을 느끼게 돼요. 브레이크댄스도 좋아했던 걸 보면, 그런 느낌들을 확실히 좋아해요.

스위스에 있을 때는 크루저보드를 탔는데, 한국의 거친 노면이 아니라서였는지 부드러운 감각이 좋았어요. 이래서 타는구나 싶어 타다가, 슬슬 다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관뒀어요.

스릴보다 겁이 많아진 건 몇 살 때였어요?
30대 초반이었어요. 언젠가는 한번 크게 다칠 것 같은데, 가뜩이나 스위스에선 다치면 여러모로 골치 아플 테니 살살 요령껏 탔죠.

요즘은 위험한 스포츠는 엄두 못 내시겠네요?
그쵸.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태권도, 유도, 카포에라(Capoeira)를 특히 좋아했어요. 위험한 스포츠를 좋아했다기보단 효율적이거나 극적으로 중력과 원심력이 활용되는 운동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무도를 주제로 작업해도 재밌겠는데요. 이소룡이나 이연걸 나오는 무협영화들 보면 영상이 갑자기 멈춘 뒤에 소리는 계속 흐르다가 스틸 위로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그런 장면들 인상적이잖아요. 격동 속에서 멈춘 한 순간, 그런 작업들을 모아도…
그렇네요. 작업이 될 만해요.

이렇게 안 될 거라면…

그래픽디자인이 사진 작가로의 도정에 영향 주는 부분이 있다고 하셨는데, 반대 영향도 있을까요? 이를테면 순서가 거꾸로 됐다면 어떠셨을 것 같아요? 걷지 않은 길에 대한 질문이 되네요.
일단은 그래픽과 사진을 (순서대로) 경험해버렸기 때문에, 경험을 뿌리뽑아서 완전히 새롭게 상상하는 것이 잘 안 돼요. 그래픽디자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을 과연 하게 되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요.

그렇겠네요, 제가 보는 그래픽디자이너는 해결사예요. 문제가 있으면 그 윤곽을 설정한 후 층위 분리를 잘하죠. 그래서 카오스 같았던 데이터들을 그래픽디자이너들이 질서 있게 만든 편집물 보는 거 좋아하거든요. 그래픽디자이너들 특유의 인식법을 가지면 삶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디자인할 때 결과물을 돌이켜보면 정리는 잘된 편이었어요. 하지만 일상생활은 전혀 그렇지 못했죠. 강박적이고 청결한 느낌인 제 사진에 비해 제 작업공간은 깔끔하게 못 해요.

정리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일 수도 있죠.
무결하고 싶은 쓸데없는 욕망을 지녔어요.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생활 속에서도 그런 거죠? 30분 여유밖에 없으면 차라리 안 치우고 마는 거요.
정말이에요. 이렇게 안 될 거라면 시작을 못 하겠어요.

어떤 면에서는 효율이 높은 거예요.
욕실이 넓은 데서 지낼 때는 운동도 욕실에서 했어요. 운동을 하고 땀을 낸 다음 씻어야 하니까요. 씻기 힘든 상황이라면 운동을 안 하고 말았어요. 만약 똥을 누고 싶은데 샤워는 해야 되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똥이 나중에 나올 것 같으면 샤워도 미루는 거죠.

외부에서 화장실 가기 되게 힘들 텐데, 그건 강박인데요.
밖에서 화장실 잘 안 가요. 편하지도 않고, 밖에서는 샤워하기 힘드니까요.

그것도 나라고…

작가님의 작업물을 보면 크기를 다르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감각이 전해지는데,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크기를 바꾸어가며 생각하세요?
어릴 때 분재를 들여다보면서 제가 작아지는 상상을 자주 하던 편이었어요. 촬영할 때도 대상과 저의 스케일을 자주 바꿔가며 생각하기도 하는데, 주로 큰 것에는 크게, 작은 것에는 작게 대입해보는 편이에요. 건물을 촬영할 때면 건물을 작게 볼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걷는 속도가 상상보다 훨씬 느리게 되니까 내심 답답할 때도 있어요. 질문하신 것이 ‘자아'에 대해서라면, 그것도 자주 생각하는 주제입니다.

그다지 생각 안 하고 살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예술가들은 작업 특성상 자주 자아상을 환기하게 되는 듯해요.
작가로 활동하면 자신 자체를 내보이기도 해야 하니까요. 그런 점이 디자이너일 때와는 조금 달라진 점이에요. 그래픽디자인에서는 가급적이면 작업자의 자아가 덜 드러나는 결과물을 선호했거든요. 지금은 결과물에 어떻게 얼마나 나를 드러내야 좋을지 고민하는 일이 많아요.

그러다 어떤 자아가 남들에게 인식되고 굳어지면 반박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나요?
처음에는 다르게 이해하면 의아했거든요. ‘왜 오해하지’ 했는데 각자 보이는 대로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고,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제 작업도 결국 드러난 표면과 그걸 바라보는 형식에 관한 이야기니까.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고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오해라는 말이 있으려면, 스스로는 단일한 정의를 전제한다는 뜻이잖아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어떤 반응을 듣고서, 이것도 나였구나 싶으실 때는 없나요?
많아요, 그것도 나라고 생각될 때. 도를 지나치지 않는 한 오해하는 것에 되도록 열려 있으려고 노력해요. ‘왜 나를 오해하지’가 아니라 그냥 나의 그런 모습을 봤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타인을 볼 때 나름의 기준으로 생각을 하니까 당연하다고. 시각예술은 내용을 온전히 전달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지만 그걸 해소하려고 언어로 먼저 압도하는 경우는 조심하고 있어요.

하지만 모든 카테고리에 샛길이라는 게 존재하잖아요. 예를 들면 클라이언트잡이 작업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그래픽디자이너도 작가주의적으로 할수록 긍정적으로 두드러지는 면이 생길 수 있죠. 시각예술을 하면서 글과 말을 잘 다루면, 그건 엄청난 무기가 될 테고, 사실은 글 말고 비언어적인 사람의 뉘앙스라는 게 있기도 하고요.

저도 요즘에서야 든 생각인데요. 글과 말을 특히나 허구를 더해 잘하는 사람은 실제 경험보다 하위 경험을 다루는 거고 파는 거라고, 본인도 보람이 덜할 거라고 예전에는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본인도 간접경험을 하고 다른 사람들까지도 간접경험시킨다는 건 ‘간접’이라서 얕볼 게 아니라 ‘경험’시킨다는 점에서 존경할 만한 작업이라고, 그런 생각을 요즘 해봤어요.

맞아요. 저에게 우선순위는 작업 자체로 전달하는 것이지만, 부수적으로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 언어 표현이기도 해요. 주객전도만 되지 않는다면 좋겠어요.

‘무제(untitled)’라고 제목 붙이신 적 있나요?
좋아하지는 않는데, 딱 한 번 붙인 적이 있어요. 메세지가 담긴 제목보다는 대상 자체의 이름을 그대로 붙이거나 코드 형식의 제목을 많이 붙이게 돼요.

제목 짓는 거, 어쩌면 가장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EH라는 활동명은 언제부터 쓰셨어요?
2014년쯤부터이니까 10년 가까이 됐네요. 당시에는 전시활동과 다른 일을 좀 구분하고 싶기도 하고, 동명이인의 사진작가도 몇 분 계신 것 같아서 다른 좋은 이름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시할 때 따로 쓰는 이름을 하나 정해봐야겠다 해서 급하게 EH로 정했는데 지금은 굳이 따로 쓰진 않고, 사업자명으로만 EH가 남았어요. 사실은 작가명으로 EH가 정확히 표기되는 과정이 꽤 번거로웠거든요. 항상 대문자로 써야 한다는 지침을 매번 전달해야 하고, 둘 다 혹은 끝자가 소문자로 쓰일 때마다 매번 변경 요청을 하는 게 그 이름을 유지할 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사업자명으로는 폐기되는 일 없이 오래가겠네요.
성명란에 EH로 써달라고 할 일이 없어졌을 뿐 사업자명으로는 좋아요.

e.e. 커밍스(Edward Estlin Cummings)도 제 이름을 소문자로 쓰는 걸로 유명했는데, 커밍스 책의 한국어판을 내는데 “소문자로 표기해야겠죠?”라고 에이전트에게 물어보니 “그냥 통상적으로 대문자 쓰셔도 돼요.”라는 답변을 들어서 조금 허탈했던 기억이 있네요.
영문 성명 표기를 알려드려도 다르게 인쇄되는 경우도 곧잘 생기니까요. 이런 걸 신경 쓰며 살 필요가 있을까란 의문도 들어서 잘 안 쓰게 됐어요.

왔다 갔다 앉았다 일어났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자주 걷는 곳은?
요즘으로 한정한다면 작업공간이에요. 밖에서 걷는 일이 거의 없고 따로 운동도 안 하거든요. 거의 10년째요. 아직까지 몸이 버티는 걸 보면 걸음이 살려주고 있는 것 같아요. 적어도 촬영할 때 실내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만 보를 걸어요.

최적의 포인트를 찾기 위해서 걷는 건가요?
돌아서면 또 다른 것이 보이고 계속 돌아왔다가 앉았다 일어났다를 어쩐지 엄청 반복하게 돼요.

어쨌거나 ‘앉았다 일어났다’는 몸에서 가장 큰 근육을 단련하는 좋은 운동이네요.

인터뷰이 | 김경태 kyoungtae kim
인터뷰어 | 김미래 mirae kim
편집 | 쪽프레스 press jjokk
기획 | 윤지혜 jihye yoon
사진 | 박유진 eugene park
디자인 | 신채린 chaerin shin

2023. 0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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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사진가 김경태, 찍을 것이 놓인 실내를 왕복한다
판매가 ₩1
상품간략설명 인터뷰이 | 김경태 kyoungtae kim
인터뷰어 | 김미래 mirae kim
편집 | 쪽프레스 press jjokk
기획 | 윤지혜 jihye yoon
사진 | 박유진 eugene park
디자인 | 신채린 chaerin shin

2023. 0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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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김경태, 찍을 것이 놓인 실내를 왕복한다 수량증가 수량감소 1 (  )
인터뷰이 | 김경태 kyoungtae kim
인터뷰어 | 김미래 mirae kim
편집 | 쪽프레스 press jjokk
기획 | 윤지혜 jihye yoon
사진 | 박유진 eugene park
디자인 | 신채린 chaerin shin

2023. 0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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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 김경태, 찍을 것이 놓인 실내를 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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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품간략설명

인터뷰이 | 김경태 kyoungtae kim
인터뷰어 | 김미래 mirae kim
편집 | 쪽프레스 press jjokk
기획 | 윤지혜 jihye yoon
사진 | 박유진 eugene park
디자인 | 신채린 chaerin shin

2023. 0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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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목차
The Walk #5
The Walk #5사진가 김경태, 찍을 것이 놓인 실내를 왕복한다

세계의 무술을 섭렵하며 중력을 경험해나가던 소년은 이제 작업공간을 걷습니다. 한 사물을 이리저리에서 보고, 보지 않고 스쳐 지나가고, 돌아와서 눈길을 주다가는 정지한 화면에 담습니다. 물론 이것이 이 사물의 전부는 아닙니다. 전부가 아님을 알고, 어깨와 눈의 피로를 참으며, 일부를 겹칠 뿐. 2012년부터 특유한 관찰의 시선을 보여온 김경태 사진가를 만나 잠시 걸어보았습니다, 작지만 무한히 걸을 수 있는 그의 실내에서.

김경태 사진가
생산적인 도피

첫걸음이라고 하면 언급하고 싶은 사건이나 특정 시기가 있으세요?
학부 전공이 그래픽디자인이었는데, 그때도 사진을 굉장히 좋아해서 취미로 작업한 걸 가지고 독립출판물로 제작하기도 했거든요. 그 작업들이 사진가 커리어로 보자면 첫걸음에 가깝게 느껴져요.

그때의 프로젝트들은 단독으로 진행하신 거예요?
2008~2009년 정도였는데요. 미디어버스에서 진행한 독립출판 워크숍에 참여했고, 그때 수강했던 친구들이 모여 프로젝트를 꾸리게 됐어요. 학부 시절 작업했던 사진들 일부와 새로 작업한 것들로 저도 나름의 출판물을 만들었어요. 플랫플랜(Flatplan)이라는 이름의 모임이었고, 아트선재 1층에 있던 더북스에서 간단한 행사도 진행했어요.

좀더 본격적인 사진 작업으로는 2011~2012년에 걸쳐 찍었던 밤의 모텔 외관조명과 상가주택을 촬영한 시리즈를 말씀드릴 수 있어요.

저는 돌 사진 찍으신 때부터 알았던 것 같아요.
말씀드린 건 돌 사진(『온 더 록스』) 전에 했던 작업이었는데요, 깜깜한 도로에서 보이는 모텔 외관 조명의 형태, 지상 주차장에 드러난 건물들의 옆면이나 뒷모습, 그리고 오래된 상가주택의 형태가 재밌다고 느꼈어요.

사진가로의 본격적인 걸음 이전의 걸음이라면 그래픽디자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그래픽디자인이 사라진 정체성이 아니라면, 지금껏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요?
기본적으로 그래픽디자인의 방법론이나 접근법을 어느 정도 공유해온 것 같아요. 계속 해왔던 것이기 때문에.

상술한다면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제약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태도랄까요.

디자인 작업의 제약이란 건 우선 클라이언트 존재잖아요? 사진도 똑같은 환경이라고 볼 수 있나요?
그 부분이 지금과 가장 다른 점이죠. 하지만 사진 작업을 하더라도, 기간이나 예산, 표현방식 등 일부 제약을 안고 가죠. 제약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많이 고민해요. 작업을 하면서도 제약을 해결해가면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추구하는 방식이 몸에 익어 있어요.

처음부터 작가로서 정체화하고 훈련해온 분들과 이야기 나눌 때면, 조금은 다른 점을 느껴요. 저는 작품의 내용 자체도 중요하지만 보이게 될 장소와 방법에 따라 작품의 최종 형태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픽디자인이 싫어서 반대 방향으로 떠나신 게 아니었네요. 빡빡한 요건을 충족하는 해결사 역할을 관두면서 떠나는 디자이너들이 있으니까요.
그쵸, 디자인 자체가 싫진 않았어요. 그때까지의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하려고 준비를 했던 시기가 있는데요. 그래픽디자인을 그만두더라도 사진은 진지한 취미로 지속할 마음이었는데, 친구의 권유도 있었고, 아무래도 취미 이상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준비하던 걸 접고 곧바로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미련 없이 정리하고 훌쩍 유학 떠나신 거였네요.
이래저래 도피였어요.

학과명이 어떻게 되죠?
지금은 세분화됐다고 들었는데, 당시에는 아트디렉션이었어요. 1년은 타입디자인, 그래픽디자인, 사진을 두루 다루면서 활용하는 것을 배우고 2년차부터는 선택심화 과정으로 수강하는 체제였어요. 같이 다룰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느껴서 갔지만 막상 사진에 집중하니까 디자인에 에너지를 투자할 여력이 없더라고요. 가끔 제 포트폴리오를 정리한다든가 선반을 제작하고 설치하기 위해서 그리드를 계획하는 등 소소한 용도로 활용하고 있어요.

당분간은 그래픽디자인을 할 가능성이 없겠죠?
네, 아직 사진만도 벅차서.

아예 다른 영역으로 훌쩍 떠나보고 싶어질 수도 있잖아요?
아, 그러게요. 그럴 수도 있죠.

김경태 작가의 사진집.
왼쪽부터 차례대로 『ON THE ROCKS』, 『From Glaciers To Palm Trees: Tracking Dams in Switzerland』, 『표면으로 낙하하기』, 『Angles』
건물의 벽과 모서리를 촬영한 사진집 『Angles』, 프레스룸
불모지의 관찰가

예전에 다니던 잡지사(《지콜론》)에서 단행본 브랜드를 론칭하게 되었는데, 국내 기획을 하는 중에 여러 분들에게서 동시다발적으로 작가님을 추천받았어요. 어떤 카테고리일진 모르겠지만 취향이 독특하고 발상이 기막힌 친구가 있는데, 괜찮은 책이 나올 거라고들 얘기했어요.
예전엔 제가 생각해도 그랬던 것 같은데, 잘 몰랐던것 같고 지금은 워낙 잘하는 분들이 많이 보이니까.

예전엔 불모지라고 느꼈나요?
그 자체가 불모지라기보다는 왜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이 없는지 의아해했죠. 물론 보이지 않는 데서 하는 분들이 전무할 린 없지만요.

드러나거나 마주칠 창구가 적었나 봐요.
그럴지도요. 초창기 SNS에 사진을 올리면 “이렇게 찍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보고 똑같이 찍으라면 대부분 쉽게 찍을 텐데’라고 생각했죠.

못 찍을 텐데요.
물론 차이가 있죠. 디자인도 마찬가지겠지만 분야 내 전문가들이 보면 분명 넘기 힘든 차이가 존재해요. 하지만 외부에서 보면 비슷해 보이기도 하거든요.

흉내 내기 어려울 거라고 느껴지는데요. 장인에 가까운 성향이 포커스스태킹 같은 작업방식으로 연결된다고 느꼈어요.
그런 식의 작업 방식이 저의 강점이라고 여겼고, 아직까지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게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가끔 자문해요.

효율과 반대에 있는 게 오히려 좋아 보이는걸요.
즐거우면서도 힘들긴 해요. 나를 갈아 넣는 일이라는 생각이 자주 들고요. 한 끗 차이를 허용한다면 촬영도 비슷한 결과물을 낼 수 있으니까요. 티 안 나게 에너지를 쏟는 부분에 대해서 늘 고민이에요.

그거 느껴져요. 티날 리 전혀 없는 영역, 이를테면 사진을 찍기 전까지의 관찰 같은 것에도 시간을 많이 들인다는 인상이에요. 만약 이 짐작에 일리가 있다면, 관찰의 의지나 동력은 어디에서 오나요?
관찰하는 건 어렸을 때부터의 습관이에요. 열 살까지 꽤 시골에 살았어요. 합천에서 다섯 살까지, 거창에서 열 살까지. 냇가에 다니는 게 일과였고, 물고기랑 돌을 채집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잘 잡으려면 잘 봐야 되잖아요. 물고기나 곤충들 대다수가 자연에 섞여 들어가 있고 돌도 널린 데서 추려야 하니 관찰하는 나날이었어요.

동행도 있으셨어요?
가끔이요, 주로 혼자 다녔어요. 합천은 정말 시골이어서 또래 애들이 거의 없었죠. 읍내에 있는 유아원 같은 곳에는 그래도 좀 있었는데 한 동네라기엔 먼 곳에 사는 애들이었고요. 거창에 살 때는 옆집에 다른 친구들이 있으니 여럿이 다니기도 했어요. 참, 당시에 아버지 취미가 분재와 수석 수집이었어요.

아! 그 얘길 들으니 『무능한 사람(無能の人)』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만화가 떠오르는데, 고적한 시골 마을에서 수석을 채집하고 판매하는 아버지 얘기거든요. 거기 나오는 꼬마 아들은 아빠를 이해 못 하지만… 그거 추천드릴게요.

찍을 것과 함께하는 생활

작업에 있어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부분이나 과정에 대해 들려주실 수 있나요?
이렇다 할 구체적인 프로세스가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보는 데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해요. 뭘 찍어야 하는 상황에 처하면 일단 물건을 받아놓고 계속 한자리에 둬요. 하루 종일 물건만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한자리에 두고 저는 저대로 생활하죠. 저는 그걸 관찰이라고 여기는데 관점에 따라 작업을 미루는 거기도 해요.

약간 섬뜩한데요. 내가 바라보는 순간 빼고는 그게 날 바라보고 있을 텐데요.
사람이라면 무섭겠지만, 물건이라 괜찮아요. 인물 촬영은 잘 못하겠더라고요.

요청은 많죠?
가끔 오는데요, 잘 아는 사람이 청할 땐 덜 난처해요. 마주 보는 게 익숙할 정도의 사람은 찍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인물을 잘 찍는 편은 못 되지만요. 뭔가가 계속 바뀌는 순간을 포착해야 되잖아요. ‘이건 이 각도, 이 순간이 최고야’라고 단언하는 걸 어려워하는 편이예요.

그럼 보통은 찍을 수 있는 만큼 여러 장 찍은 다음에 소거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할 수 있는 촬영 같은 경우에는 그렇게 해요. 특히 건물이나 특정 이벤트를 촬영할 때는 가능한 한 많은 장면을 확보해두려고 하죠.

작업실에 들여다놓고 볼 수 없으니까!
맞아요. 작은 사물을 촬영하는 경우에는 다양한 장면을 찍기보다는 줄곧 보다가 한 장면을 택해서 담아요. 그 범위 내에서는 조금씩 수정하면서요. 조금 틀어서 찍거나 조명에 변화를 주는 식으로 하는 편이에요.

그러니 노동강도가 세겠네요. 환경도 바뀌고 시간도 흐르니.




(언)아카이브에 따른 활동량 왈가왈부

사진작가 경력이 10년 조금 넘으셨잖아요. 그간 활동량이 일정하지 않으셨죠?
스위스에 있을 때는 외부 활동이 많지 않았어요. 그때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해서. 스위스로 유학 가기 직전에 사진가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겠다는 느낌도 들었는데 바로 그렇게 시작해버리는 데 두려움이 있었어요. 좀 더 혼자 해보고, 그러고 나서 하더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갔기 때문에 도피성 유학이라고 말씀드렸던 거예요.

도피지만 ○○로부터만이 아니고 ○○로 향하는 도피니까 좋은데요. 앞으로의 활동량은 조절하실 수 있어요?
한국에 돌아오고부터는 주어지는 대로 꽤 많이 했어요. 물론 SNS만으로 보자면 불규칙하고 적어 보이는 게, 업로드해야지 생각했던 게 한 달씩 밀리다 해를 넘어가니까 이제는 바로바로 못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럼 아카이브는 웹으로 하고 계세요?
아니요. 웹도 따로 운영하는 것이 없어요. 작업의 전 공정을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서 지금 최대의 숙제를 꼽자면 웹사이트 만들기일 거예요.

직접 만들 예정이세요?
저는 사진만으로도 벅차서 개발과 디자인은 의뢰할 생각을 하고 있어요. 돌이켜보면 최근 5년은 이틀 이상 쉬어본 적이 없어요. 휴가만을 위한 휴가를 가본 적요.

디지털 노마드의 숙명이죠, 언제나 접속돼 있는 상태로 휴가 가는 거요.
맞아요, 개인 작업이랑 의뢰받는 일을 모두 다루려니까 더 여유가 없는 것 같고. 전시 같은 경우도 저는 아직까지는 참여 기회가 생길 때마다 되도록 신작을 선보이려고 하거든요.

아카이브 형태로 선보이는 게 아니니까 에너지가 새로 들겠네요. 그런 데다 아카이브를 하려면 조만간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겠고요.
가능할 때 되도록 다른 걸 해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기간이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새 작업을 해요. 그래서 활동량이 일정치 않다는 질문에 놀랐어요. 저는 늘 활동중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하냐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었거든요….

하긴 여기저기서 이름이 발견되니까요. 일정치 않다는 인상은 아마도, 아카이브의 부재에서 온 것 같아요. 연역적으로 미션에 따른 타임라인을 설정한다는 느낌이 아니고, 흘러가는 대로 누군가가 부르면 응하고, 다른 데서 부르면 거기에 들르는 식의 장면이 그려졌거든요.
맞아요, 끝없이 흘러가고 있죠. 저는 일정이나 조건이 아주 척박하지 않다면 가능한 한 전시에 참여하려고 해요. 그렇게 계속하게 된 거예요.

“아주 척박하지 않다면”이라는 판단은 사전적인 거고, 막상 작업에 임하게 되면 도전 이상인 경우가 많잖아요. 지난 프로젝트 중에, 이건 애초에 안 하는 게 좋았겠다, 너무 힘들었다 하는 것도 있죠?
매번 그렇죠! 거의 매번 왜 내가 이렇게 하기로 했을까 자주 생각하는 편이에요.

근데 그러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시잖아요.
문제는 직성일까요?

갑각류의 탈피 본능 같은 거 아닐까요? 도중에 완수하지 못한 프로젝트도 있으세요?
어떻게든 끝은 내요. 평소 꼼꼼하고 완벽한 성격이 아닌데도, 작업은 완벽했으면 하고 욕심을 내니까 거기서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 덕분에 결과물이 봐줄 만해져요. 어떨 때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신작을 계속 내려고 하고, 계속 달라지려고 하고, 반복을 못 참는 성미가 있으신 거예요?
반복적인 걸 되도록 피하려고 하는데, 이제는 그동안 했던 작업들을 좀 더 반복해봐도 좋지 않을까 한편으로 궁금해요. 계속 다른 것을 하려니까 경황 없이 넘어가기도 해서, 지난 작업들을 펼쳐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싶기도 해요. 원래는 그런 건 한참 뒤에 하자 싶었는데, 나중은 나중대로 하기 힘들어지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곧 아카이브 형태로 만날 수 있겠네요.
아카이브하면서, 스펙트럼을 넓게 한눈에 보면 어떨까 해요. 작업의 대상과 스타일이 바뀌니 보는 분들도 왜 이걸 했지 의아해하는 경우도 있어요. 한번은 대상과 표현방식이 바뀐 이유가 이전 작업의 한계를 느껴서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는데, 조금 충격이었어요.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구나. 그러니까 그 방법과 시선이 다 소진되어서 넘어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요. 아직까지는 한계를 볼 때까지 밀어붙이거나 도장을 깨듯 넘어간 것이 아닌데, 보완이든 아카이브든 필요한 단계라는 생각은 들어요. 기존의 아카이브를 펼치면서 동시에 보완하고 발전시키는 걸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요리와 운동의 추억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작업과 생활이 그다지 분리되어 있지 않군요.
제일 큰 문제예요.

비교적 생활적인 영역이라고 말해줄 것 있으세요? 여기 있는 어항 관리도 작업의 일환으로 보이는데요.
맞아요, 작업처럼 하고 있고 언젠가 작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죠.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얻은 취미예요.

잠재적으로도 연결 가능성 없는 영역은 없으세요? 이를테면 요리 같은 거요.
요리를 제대로 해본 지는 엄청 오래됐어요.

저 최초로 먹어본 아스파라거스가 작가님이 해준 요리에서였어요. 10년 전쯤 지콜론북에서 『크리에이터의 즐겨찾기』랑 『반려식물』 저자로 참여했을 때 출간 기념으로 초대해주셨잖아요. 유학 가기 직전이었는데, 도시에서 생활하는 1인 선배의 모습을 그때 보여줬죠. 아스파라거스를 구워 먹고 이끼를 키우는 풍경으로요.
그러고 보면 그 시기 열심히 해먹었어요. 주로 집에서 작업했으니까 요리하기도 좋았고, 집 근처 가까운 곳에 식당도 별로 없었거든요. 특히 제가 접근할 만한 가격대에서 맛있게 하는 외국 음식점은 손에 꼽힐 정도였어요.

스위스에서는 요리를 안 할래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오히려 한국에 돌아와서 식재료 물가에 충격을 받기도 했고, 지금은 어지간하면 현지보다 서울에 잘하는 것이 많기 때문에, 예전만큼 직접 요리를 많이 하지는 않아요.

10년 만에 강산이 바뀌었네요. 운전은 여전히 좋아하시죠? 그러고 보면 작업이랑 연결됐네요, 운전은. 『From Glaciers To Palm Trees』 사진집 프로젝트에서 운전이 중요했으니까요. 걷는 것보다 속도가 나서 좋아하시는 거예요?
그런 것 같아요, 중고등학생 때는 스키랑 스노보드를 정말 좋아했거든요. 혼자 타러 다닐 정도로요. 비싸서 자주는 못 가고, 가면 새벽부터 야간까지 타고 왔어요. 뭐랄까, 그 중력의 느낌이 좋아요. 비슷한 이유로 무술을 좋아했거든요. 특정한 동작들을 할 때 몸이 중력 가속을 느끼게 돼요. 브레이크댄스도 좋아했던 걸 보면, 그런 느낌들을 확실히 좋아해요.

스위스에 있을 때는 크루저보드를 탔는데, 한국의 거친 노면이 아니라서였는지 부드러운 감각이 좋았어요. 이래서 타는구나 싶어 타다가, 슬슬 다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커지면서 관뒀어요.

스릴보다 겁이 많아진 건 몇 살 때였어요?
30대 초반이었어요. 언젠가는 한번 크게 다칠 것 같은데, 가뜩이나 스위스에선 다치면 여러모로 골치 아플 테니 살살 요령껏 탔죠.

요즘은 위험한 스포츠는 엄두 못 내시겠네요?
그쵸.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태권도, 유도, 카포에라(Capoeira)를 특히 좋아했어요. 위험한 스포츠를 좋아했다기보단 효율적이거나 극적으로 중력과 원심력이 활용되는 운동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나중에 무도를 주제로 작업해도 재밌겠는데요. 이소룡이나 이연걸 나오는 무협영화들 보면 영상이 갑자기 멈춘 뒤에 소리는 계속 흐르다가 스틸 위로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는 그런 장면들 인상적이잖아요. 격동 속에서 멈춘 한 순간, 그런 작업들을 모아도…
그렇네요. 작업이 될 만해요.

이렇게 안 될 거라면…

그래픽디자인이 사진 작가로의 도정에 영향 주는 부분이 있다고 하셨는데, 반대 영향도 있을까요? 이를테면 순서가 거꾸로 됐다면 어떠셨을 것 같아요? 걷지 않은 길에 대한 질문이 되네요.
일단은 그래픽과 사진을 (순서대로) 경험해버렸기 때문에, 경험을 뿌리뽑아서 완전히 새롭게 상상하는 것이 잘 안 돼요. 그래픽디자인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진을 과연 하게 되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요.

그렇겠네요, 제가 보는 그래픽디자이너는 해결사예요. 문제가 있으면 그 윤곽을 설정한 후 층위 분리를 잘하죠. 그래서 카오스 같았던 데이터들을 그래픽디자이너들이 질서 있게 만든 편집물 보는 거 좋아하거든요. 그래픽디자이너들 특유의 인식법을 가지면 삶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디자인할 때 결과물을 돌이켜보면 정리는 잘된 편이었어요. 하지만 일상생활은 전혀 그렇지 못했죠. 강박적이고 청결한 느낌인 제 사진에 비해 제 작업공간은 깔끔하게 못 해요.

정리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서일 수도 있죠.
무결하고 싶은 쓸데없는 욕망을 지녔어요.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지만.

생활 속에서도 그런 거죠? 30분 여유밖에 없으면 차라리 안 치우고 마는 거요.
정말이에요. 이렇게 안 될 거라면 시작을 못 하겠어요.

어떤 면에서는 효율이 높은 거예요.
욕실이 넓은 데서 지낼 때는 운동도 욕실에서 했어요. 운동을 하고 땀을 낸 다음 씻어야 하니까요. 씻기 힘든 상황이라면 운동을 안 하고 말았어요. 만약 똥을 누고 싶은데 샤워는 해야 되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똥이 나중에 나올 것 같으면 샤워도 미루는 거죠.

외부에서 화장실 가기 되게 힘들 텐데, 그건 강박인데요.
밖에서 화장실 잘 안 가요. 편하지도 않고, 밖에서는 샤워하기 힘드니까요.

그것도 나라고…

작가님의 작업물을 보면 크기를 다르게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감각이 전해지는데,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크기를 바꾸어가며 생각하세요?
어릴 때 분재를 들여다보면서 제가 작아지는 상상을 자주 하던 편이었어요. 촬영할 때도 대상과 저의 스케일을 자주 바꿔가며 생각하기도 하는데, 주로 큰 것에는 크게, 작은 것에는 작게 대입해보는 편이에요. 건물을 촬영할 때면 건물을 작게 볼 때도 있는데, 그럴 때는 걷는 속도가 상상보다 훨씬 느리게 되니까 내심 답답할 때도 있어요. 질문하신 것이 ‘자아'에 대해서라면, 그것도 자주 생각하는 주제입니다.

그다지 생각 안 하고 살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예술가들은 작업 특성상 자주 자아상을 환기하게 되는 듯해요.
작가로 활동하면 자신 자체를 내보이기도 해야 하니까요. 그런 점이 디자이너일 때와는 조금 달라진 점이에요. 그래픽디자인에서는 가급적이면 작업자의 자아가 덜 드러나는 결과물을 선호했거든요. 지금은 결과물에 어떻게 얼마나 나를 드러내야 좋을지 고민하는 일이 많아요.

그러다 어떤 자아가 남들에게 인식되고 굳어지면 반박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나요?
처음에는 다르게 이해하면 의아했거든요. ‘왜 오해하지’ 했는데 각자 보이는 대로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고,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제 작업도 결국 드러난 표면과 그걸 바라보는 형식에 관한 이야기니까.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럽고 재미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오해라는 말이 있으려면, 스스로는 단일한 정의를 전제한다는 뜻이잖아요? 전혀 상상하지 못한 어떤 반응을 듣고서, 이것도 나였구나 싶으실 때는 없나요?
많아요, 그것도 나라고 생각될 때. 도를 지나치지 않는 한 오해하는 것에 되도록 열려 있으려고 노력해요. ‘왜 나를 오해하지’가 아니라 그냥 나의 그런 모습을 봤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타인을 볼 때 나름의 기준으로 생각을 하니까 당연하다고. 시각예술은 내용을 온전히 전달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지만 그걸 해소하려고 언어로 먼저 압도하는 경우는 조심하고 있어요.

하지만 모든 카테고리에 샛길이라는 게 존재하잖아요. 예를 들면 클라이언트잡이 작업의 상당량을 차지하는 그래픽디자이너도 작가주의적으로 할수록 긍정적으로 두드러지는 면이 생길 수 있죠. 시각예술을 하면서 글과 말을 잘 다루면, 그건 엄청난 무기가 될 테고, 사실은 글 말고 비언어적인 사람의 뉘앙스라는 게 있기도 하고요.

저도 요즘에서야 든 생각인데요. 글과 말을 특히나 허구를 더해 잘하는 사람은 실제 경험보다 하위 경험을 다루는 거고 파는 거라고, 본인도 보람이 덜할 거라고 예전에는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본인도 간접경험을 하고 다른 사람들까지도 간접경험시킨다는 건 ‘간접’이라서 얕볼 게 아니라 ‘경험’시킨다는 점에서 존경할 만한 작업이라고, 그런 생각을 요즘 해봤어요.

맞아요. 저에게 우선순위는 작업 자체로 전달하는 것이지만, 부수적으로 반드시 필요로 하는 것이 언어 표현이기도 해요. 주객전도만 되지 않는다면 좋겠어요.

‘무제(untitled)’라고 제목 붙이신 적 있나요?
좋아하지는 않는데, 딱 한 번 붙인 적이 있어요. 메세지가 담긴 제목보다는 대상 자체의 이름을 그대로 붙이거나 코드 형식의 제목을 많이 붙이게 돼요.

제목 짓는 거, 어쩌면 가장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EH라는 활동명은 언제부터 쓰셨어요?
2014년쯤부터이니까 10년 가까이 됐네요. 당시에는 전시활동과 다른 일을 좀 구분하고 싶기도 하고, 동명이인의 사진작가도 몇 분 계신 것 같아서 다른 좋은 이름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시할 때 따로 쓰는 이름을 하나 정해봐야겠다 해서 급하게 EH로 정했는데 지금은 굳이 따로 쓰진 않고, 사업자명으로만 EH가 남았어요. 사실은 작가명으로 EH가 정확히 표기되는 과정이 꽤 번거로웠거든요. 항상 대문자로 써야 한다는 지침을 매번 전달해야 하고, 둘 다 혹은 끝자가 소문자로 쓰일 때마다 매번 변경 요청을 하는 게 그 이름을 유지할 만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사업자명으로는 폐기되는 일 없이 오래가겠네요.
성명란에 EH로 써달라고 할 일이 없어졌을 뿐 사업자명으로는 좋아요.

e.e. 커밍스(Edward Estlin Cummings)도 제 이름을 소문자로 쓰는 걸로 유명했는데, 커밍스 책의 한국어판을 내는데 “소문자로 표기해야겠죠?”라고 에이전트에게 물어보니 “그냥 통상적으로 대문자 쓰셔도 돼요.”라는 답변을 들어서 조금 허탈했던 기억이 있네요.
영문 성명 표기를 알려드려도 다르게 인쇄되는 경우도 곧잘 생기니까요. 이런 걸 신경 쓰며 살 필요가 있을까란 의문도 들어서 잘 안 쓰게 됐어요.

왔다 갔다 앉았다 일어났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자주 걷는 곳은?
요즘으로 한정한다면 작업공간이에요. 밖에서 걷는 일이 거의 없고 따로 운동도 안 하거든요. 거의 10년째요. 아직까지 몸이 버티는 걸 보면 걸음이 살려주고 있는 것 같아요. 적어도 촬영할 때 실내에서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것만으로도 만 보를 걸어요.

최적의 포인트를 찾기 위해서 걷는 건가요?
돌아서면 또 다른 것이 보이고 계속 돌아왔다가 앉았다 일어났다를 어쩐지 엄청 반복하게 돼요.

어쨌거나 ‘앉았다 일어났다’는 몸에서 가장 큰 근육을 단련하는 좋은 운동이네요.

인터뷰이 | 김경태 kyoungtae kim
인터뷰어 | 김미래 mirae kim
편집 | 쪽프레스 press jjokk
기획 | 윤지혜 jihye yoon
사진 | 박유진 eugene park
디자인 | 신채린 chaerin shin

2023. 0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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